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원천마을은 해발 350미터이상의 고지대이며, 면 소재지에서 뱀사골쪽으로 약 0.6키로 지점에있어며, 덕두산을 분기점으로 큰평전이 있어 운봉읍과 경계가 되며, 지방도 861호선이 마을앞을 통과하여 타 산촌보다 교통이 편리하며, 뱀사골의 첫 관문으로 소동폭포, 산신바위, 외톨솔백이, 송대, 샘, 매봉날등 수려한 산 과 아름다운 계곡등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다.

마을 지형은 나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며, 옛날 무슨연유 인지 모르지만 나비의 양 날개에 해당하는 곳에 삼마 및 닥나무을 삶는 솥(삼굿)을 여러 개 걸어 마을의 맥이 끊어져 마을이 번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옛날 신선들과 선녀들이 놀았다는 산신바위 전설에 의하면 원천리에서 온천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지며, 마한의 별궁인 달궁리에서 왕, 중신 및 궁녀들이 원천리에서 온천을 즐겨 하였다고 전해져 오고있으며, 우리 마을은 본래 온수동이라 하여 만병이 치료된다는 약수가 나와 나병환자들이 발길이 잦은 곳이었다.
이에 불편을 느낀 주민들이 이들을 막기 위해 우물을 메우고 그 자리에 느티나무를 심었고 마을 이름을 원수동이라 고쳐 불렀다. 그 후 장항리 출신으로 1894년 동학혁명 때 남원의 동학접주 김개남 동학군을 운봉 방아재 와 관음치 전투에서 대파한 주서 박봉양의 제안으로 원천리라 부르게 되었다.

양대박이 1586년 9월에 지리산일대를 유람한 기록에 보면 초가가 잘 어울러진 산간마을과 곡식에 적당한 토양, 과일에 적당한 임야, 고기잡이에 적당한 시내가 있어서 참으로 관대하고 한가로운 동네로, 한적한 물가가 있어 은자가 거쳐하며 노닐 만한 곳이었다 라고 쓰여져 있으며 이는 원천리를 말하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선조 25년(1592)경 임진왜란을 만나 피난 왔던 사람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나 언젠가 화재로 모든 가옥이 소실되어 한 동한 폐촌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분성 배씨 와 청주한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으나 이 두 성씨는 후손이 적어 주류를 이루지 못하고 다른 성씨들이 이주해 와 현재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형의 경계를 보면 큰 산 및 큰 하천을 경계로 구분을 한다. 뱀사골 쪽에 보면 마한의 달궁터가 있며,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과 가까이 있으며, 실상사도 신라의 고찰이므로 이를 보면 우리마을은 옛날 신라국 이었지 않았나 생각이든다.

향이 짙은 자연산 송이 버섯, 무릎을 펼 수 있게 하는 골리수 즉 고로쇠 수액, 몸에 좋고 맛있는 고사리, 해발 350미터 이상에서 재배되어서 당도와 맛이 탁월한 뱀사골 꿀사과, 벌들이 만드는 한봉꿀, 기타 고랭지 배추, 콩등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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